[경기타임스] 2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옆구리에 끼고 골목을 걷는다. 집게 하나, 재활용 봉투 하나를 든 채 바닥을 바라보며 걷는 시간만 짧게는 1시간 반, 길게는 4시간이 넘는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다. 누군가 알아봐 주길 바란 것도 아니었다.
김민양 더불어민주당 수원시의원 후보(다 선거구·정자1·2·3동)는 그렇게 동네를 배웠다. 배달 라이더가 되어 골목 지리를 익혔고, 쓰레기를 주우며 주민 불편을 몸으로 체감했다. ‘선거 때만 보이는 정치인’이 싫었다는 그는 이제 “골목에서 자주 보이는 시의원”을 꿈꾼다. 산수화 기자단(회장 이일수 투데이 경제)이 “2~3명 모이는 곳에도 나타나는 시의원 되고 싶다”라는 김민양 후보를 만났다.[편집자 주]
다음은 김민양 후보와의 일문일답이다.
-정치에 관심은 있었는지
“정말 평범한 주부였어요.”
김민양 후보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결혼 후에는 아이를 키우며 20년 넘게 보습학원을 운영했다. 정치에 관심은 있었지만, 삶은 늘 현실이 먼저였다.
“먹고살기 바빴죠. 아이들 키우고 학원 운영하다 보면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가잖아요. 정치는 늘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어요.”
어릴 적부터 정치 성향 자체는 자연스러웠다. 민주당을 지지하던 부모 밑에서 자라 진보적 가치에 익숙했지만, 직접 정치 참여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고 했다.
-정치에 뛰어든 결정적 계기가 있었습니까?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2022년을 떠올렸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그런데 결정적으로는 이태원 참사가 컸습니다.”
당시 그의 아들은 스무 살이었다. 또래 청년들이 참사로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보며 남 일 같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가 딱 그 나이였어요. 부모 입장에서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이후 정부가 보여준 태도를 보면서 화가 났어요.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는 거리로 나갔다. 촛불을 들었고, 탄핵 집회에도 참석했다. 이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선 손 피켓을 들고 골목 선거운동에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들은 한마디가 그의 삶을 바꿨다.
“주민 한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선거 때만 다니지 마세요. 왜 평소엔 안 보이다가 선거철에만 오느냐’고요.”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맞는 말이었어요. 그래서 고민했죠. 주민과 가장 가까이 만나는 정치가 뭘까. 그 답이 시의원이었습니다.”
- 정자동을 알기 위해 배달 라이더까지 했다고요
김 후보는 웃으며 “조금 무모했죠”라고 답했다.
“정자2·3동은 사실 제가 익숙한 지역이 아니었어요. 동네를 빨리 알려면 몸으로 익혀야겠더라고요. 주변에서 배달하면 지리를 빨리 안다고 해서 앱을 깔았어요.”
그는 배달 구역을 정자동으로 한정했다. 몇 달간 직접 오토바이를 타며 골목 구석구석을 누볐다.
“상호는 몰라도 길은 몸이 기억해요. 어디가 언덕인지, 어느 골목이 좁은지, 밤길은 어떤지 직접 느꼈습니다.”
배달을 하며 보이는 풍경도 달라졌다.
“배달 기사분들이 얼마나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지 알게 됐어요. 골목 구조나 주차 문제 같은 생활 민원도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 매일 쓰레기를 줍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냥… 보여주기 싫어서 더 조용히 했어요.”
김민양 후보는 매일 아침 20리터 쓰레기봉투와 재활용 봉투를 들고 골목 청소를 했다. 봉투가 가득 찰 때까지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고개 숙이고 바닥을 보다 보면 동네가 보여요. 깨끗한 골목은 왜 깨끗한지, 반복적으로 쓰레기가 쌓이는 곳은 왜 그런지 알게 되더라고요.”
경로당 화장실 청소도 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어르신들 계신 곳 보면 부모님 생각이 나요. 그냥 마음으로 했던 일이에요. 그분들은 제가 시의원 준비하는 것도 아직 모르실 거예요.”
왜 알리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웃으며 답했다.
“‘쇼한다’는 말 듣기 싫었어요. 진짜 하고 싶어서 한 일이었거든요.”
-청년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올해 초 김 후보는 정자동 청년 40여 명과 작은 간담회를 열었다. 이름하여 ‘청년 콘서트’였다.
“처음엔 그냥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그런데 예상보다 고민이 훨씬 깊더라고요.”
특히 청년들의 불안감이 크게 와닿았다고 했다.
“SNS를 보면 다들 행복해 보이고 성공한 것 같잖아요. 그런데 그걸 보며 오히려 위축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뒤처지는 것 같다는 불안이 크더라고요.”
그는 청년 문제를 단순한 취업 문제가 아닌 ‘마음의 문제’로도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누군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어른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생활 정치란 결국 그런 거 아닐까요.”
-시의원이 된다면 가장 먼저 해결하고 싶은 문제는...
김민양 후보는 주저 없이 ‘주차난’을 꼽았다.
“정자동은 주택가와 전통시장, 중심상가가 섞여 있어서 주차 문제가 정말 심각합니다. 단속만 강화한다고 해결되지 않아요.”
그는 유휴부지를 활용한 복합 공영주차장 조성과 탄력적 주차 허용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갈등형 민원 해결 원칙도 분명했다.
“양쪽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현장을 먼저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문가 의견과 담당 공무원 의견까지 종합해서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고 싶어요.”
-주민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민양 후보는 잠시 생각하다 담담하게 말했다.
“크게 특별한 정치인이 되고 싶은 건 아니에요. 그냥 동네에서 자주 보이는 시의원이 되고 싶어요. 2~3명 모이는 작은 자리에도 가고, 주민들이 ‘저 사람 맨날 동네에 있던데’라고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골목을 익힌 시간, 쓰레기를 주우며 바닥을 내려다본 시간, 청년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은 시간. 김민양이 말하는 정치의 출발점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생활’이었다. 그리고 그는 오늘도 정자동 골목 어딘가를 걷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