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박물관 ‘농업개혁의 산실’ 특별전 윤음 원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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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박물관 ‘농업개혁의 산실’ 특별전 윤음 원문 공개
  • 이효주 기자
  • 승인 2014.11.1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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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5m60㎝ 초대형 문서 정조의 덕목.민생 방안 감동
수원화성박물관 ‘농업개혁의 산실’ 특별전 윤음 원문 공개ⓒ경기타임스

"흉년에 토목공사 하지 않는다”

정조는 1794년(정조 17) 1월 화성 성역(城役)을 시작했으나 같은 해 11월 돌연 공사를 중단했다. 그 해 심한 가뭄으로 전국에 기근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조는 신하들에게 내린 윤음(유화성성역동공제신윤음.諭華城城役董工諸臣綸音)에서 “흉년이 들면 토목공사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말을 예기(禮記)에서 들었고 조정의 정자를 치장하지 않는다는 말을 춘추전(春秋傳)에서 보았다”며 중지를 명령했다.

정조가 화성 축성을 일시 중지하고 백성의 민생 대책을 제시하는 일종의 담화문인 윤음 원본이 수원화성박물관의 수원화성 착공 22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농업개혁의 산실, 수원화성’에서 공개돼 눈길을 끈다. 

가로 563㎝, 세로 36㎝ 크기의 이 문서는 흉년으로 인한 민간의 실태, 국가가 어려운 때 군주의 도리, 화성 주민의 민생 방안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정조는 “삼남과 기전은 한가을에 굶주리다 못해 이리저리 떠돌고 서북의 변방 고을도 식량을 자급하기 어렵다고 보고하고 있다”며 “경작과 진휼을 놔두고 성역에만 힘을 쓰라고 한다면 인화(仁和)와 지리(地利)의 나뉨이 이렇지 않을 것이다”고 하고 있다.
 
정조는 이어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왕도(王都)로부터 아득한 변방에 이르기까지 늙은이, 어린이, 부녀자, 절름발이, 귀머거리, 벙어리가 모두 나의 자식이다”며 “성역은 10년을 끌어도 괜찮지만 백성은 하루 굶고 이틀 굶어 한 달간을 참게 해선 안된다”고 했다.

화성 신도시 경제방안으로 “내년 봄 북성(장안문) 밖 척박한 땅을 곡식 100곡 정도 뿌릴 수 있는 경계를 정하라”고 개간을 지시하고 “한 두 해 지나지 않아 삽을 메고 모여들어 도랑을 터서 물을 내려 보내는 아름다움을 보게 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정조는 경지정리를 하며 도랑을 팔 때 깊이를 살펴 한 길, 또는 반 길 가량 파고 임금을 날짜로 계산하지 말고 져 나른 짐을 기준으로 하되 푯말을 세워 원근을 계산해 차등을 두라고 하는 등 매우 구체적인 지시까지 하고 있다.

화성성역의궤는 이에 대해 ‘북성 밖 땅을 개간한 뒤 이듬해 봄 방죽을 쌓고 물을 채워 물을 대기 이롭게 하니 이것이 만석거다’고 기록했다.

전시회에는 가로 5m가 넘는 정조 윤음 원본을 전시장 중심에 배치하고 한글 번역 전문을 함께 게시했다. 내용이 길지만 정조의 백성에 대한 사랑과 군주의 덕목, 산업 진흥에 대한 식견 등을 한 번 읽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충분하다.  

전시회에는 이밖에 정조가 수원의 유생과 글로 소통한 농사 시무책 문답, 정조가 정약용 등 경기도에 보낸 암행어사에게 흉년에 복지정책이 잘 구현되고 있는지 살피라는 봉서(封書) 등의 원본도 볼 수 있다.

전시회에는 특히 주요 문서의 전문, 또는 주요 부분을 현대어로 쉽게 풀어 쓴 한글번역문과 충실한 해설이 곁들여져 몰입도를 높여준다.

농촌진흥청이 올해 이전한 뒤 개최되는 전시회는 정조가 화성을 축성하며 시행한 농업정책, 그 뒤 수원이 농업연구의 중심지가 되는 과정 등을 보여주며 수원시가 조선시대 이후 농업의 중심도시라는 역사성을 증언한다.

지난 달 30일 개막한 전시회는 내년 2월 1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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