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용인특례시의회 김길수 의원 ‘3선 같은 초선’ 10대째 용인뿌리다. 믿고 맡겨 주시면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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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용인특례시의회 김길수 의원 ‘3선 같은 초선’ 10대째 용인뿌리다. 믿고 맡겨 주시면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겠다.
  • 전철규 기자
  • 승인 2022.09.22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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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밀착형으로 용인특레시와 지역구 관리 앞장

-용인특례시의회에서 의정혁신연구회 활동 앞장

[용인인터넷기자단 경기타임스]“초선으로서, 믿고 맡겨 주시면 다음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겠습니다" "용인특례시의회 의원 32명 중 20명이 초선의원입니다. 제 역할은 연륜 있으신 의원분들과 젊은 의원분들 사이에서 ‘가교’ 역할이라고 봅니다". 

제9대 용인특례시 김길수 의원(국민의힘, 구갈·상갈동)의다짐이다. 

김 의원은 그러면서 의회에 입성한지 3개월도 채지나지 않아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렇기때문에 4년 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도 앞선다. 용인특례시의회가 명품 의회로 만드는데 앞장서겠습니"고 강조했다.

사진)제9대 용인특례시 김길수 의원(국민의힘, 구갈·상갈동)이 인터뷰에서 “초선으로서, 믿고 맡겨 주시면 다음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겠습니다"라고 밝히고 있다.ⓒ경기타임스
사진)제9대 용인특례시 김길수 의원(국민의힘, 구갈·상갈동)이 인터뷰에서 “초선으로서, 믿고 맡겨 주시면 다음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겠습니다"라고 밝히고 있다.ⓒ경기타임스

김 의원은 초선의원이다. ‘3선 같은 초선’이란 말이 나온다. 10대째 용인에서 살고 있는 이유가 말해준다. 그의 아이들도 모두 용인에서 태어나 용인의 공기를 마시며 자라났다. 그의 증조부는 성재 김학조 선생으로 지역에서 이름난 유림학자였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후원하기도 했단다. 만주 활동을 접고 다시 들어온 조국에서 지역 후학 양성에도 힘써 향교와 서당을 지었다. 그 하나가 현 신갈초등학교의 전신이었다고 한다.

'3선같은 초선' 김길수 의원 자부심은 대단하다. JC 활동을 하면서 20년 가까이 당생활을 해왔던 부분도 자긍심을 더한다.

김 의원의 자신감은 역대 네 명의 시장과 발맞춰 정치활동을 해왔던 부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용인특례시의회 입성 전 20년의 당생활은 김 의원의 정치 감각을 키우는 밑바탕이 됐다. ‘3선 같은 초선’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김길수 의원을 21일 오후 의원 사무실에서 용인인터넷기자단(회장 이일수, 투데이경제)이 만났다.

김 의원은 성지고등학교 운영위원장이다. 용인시축구센터 센터장, 구갈초등학교 운영위원장, 용인시디지털산업진흥원 선임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다음은 김 의원과의 일문일답.

- 정치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9대 용인특례시의회 의원 중 젊었을 때부터 당생활을 가장 오래 해왔다고 자부한다. 20년 정도 당생활을 해왔다. 현재 의원분들과도 모두 안면이 있는 사이다. 지역구도 역대 시장님을 많이 배출한 지역이다. 일례로 김학규 시장님 등이 계시다. 지금까지 네 분의 시장님을 모셨따. 시장님들이 JC(한국청년회의소) 소속이었다. JC 활동을 하면서 이정문 시장님 시절부터 당활동을 해왔다.

사진)용인특례시의회 김길수 의원은 인터뷰에서 현재 용인특례시의회가 여소야대 형국이다. 여당 의원으로서 소통과 협치 방안에 대해 답을 찾아가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경기타임스
사진)용인특례시의회 김길수 의원은 인터뷰에서 현재 용인특례시의회가 여소야대 형국이다. 여당 의원으로서 소통과 협치 방안에 대해 답을 찾아가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경기타임스

직업적으로도 정치 쪽에 관련이 있었다. 사진 전공이었고 취재 언론 부문에 동기가 많았다. 이쪽으로 길이 보였다. 처음 스튜디오 운영을 했을 때 정치인들이 사진 찍으러 오셨다. 프로필 사진 등 많이 찍어 드렸다. 그러다가 헤드카피, 캐치프레이즈 작성 등의 작업도 맡았다. 홍보 책자 제작 의뢰도 받았다. 그러면서 편집, 출판 분야에 진출하게 됐다.

정찬민 시장님 때 비용 절감도 돼서인지 제의가 왔다. 직접 집에 찾아오셨다. 당시 남경필 국회의원이 청년 신세대 발굴 취지에서 제의했었는지, (정찬민 당시 예비 후보자가) 중앙일보 사직하고 용인시장에 도전한다고 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이니 (첫 시도는) 실패했다. 혼자서는 힘드니 저를 영입하셨다. 당시 그 옆 건물이었다. 다른 직장을 모두 정리하고 정치계에 입문하게 됐다.

용인에서 10대째 살고 있다. 김학규 시장님도 저희 집안(종중) 사람이시다. 덕분에 여기저기에서 (정계 입문) 제의를 많이 받아왔다. 정찬민 시장님이 당선되시고 다른 분들하고도 다양한 경험을 해왔다. ‘3선 같은 초선’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정치를 시작하면서 “나는 이런 정치를 하겠다” 하는 나름의 정치 철학이 있다면?

앞서 잠시 언급했듯 용인이 고향이고 지금까지 10대째 거주하고 있다.

저희 증조부님께서는 진사를 하셨다. 작은 동네에서는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위치에 계셨다. 우스갯소리로 ‘저희 집 땅을 못 밟으면 용인을 못 넘어간다’ 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집안이었다).

독립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김혁 장군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도 저희 증조부가 계셔서라고 알고 있다. 증조부 김학조 선생은 유림학자셨다. 인터넷에 성재 김학조 선생 검색해도 (관련 자료를) 보실 수 있다. 그분이 (이 지방) 유지셨다. 일제 합병돼서 만주로 넘어가셨고 그곳에 성심채라는 객점을 차리셨다. 그곳은 조선에서 만주로 넘어오는 사람들이 거쳐가는 관문이었다. 며칠 묵고 노잣돈 받아가고 그런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일제에서 견제해 쇠퇴하게 됐고 조국으로 다시 들어오셨다. 그 후 후학 양성을 위해 향교와 서당인 구성의 명륜학당을 세우셨다. 이후 수원으로 넘어갔다. 그것이 지금 신갈초의 전신이 됐다.

포은 정몽주 공적비가 있는 곳 문 입구에 저희 증조부 공덕비가 있다. 그분께서는 지역 후학 양성을 위해 헌신하셨다. 끝까지 상투를 자르지 않는 등 절개도 지키셨다.

그분의 정신을 잇는 차원에서, (그 정신을) 정치철학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여러모로 자부심을 갖고 있다.

- 9대 용인특례시의회가 출범하고 2개월여가 지났다. 짧은 기간이지만, 초선 의원으로서 의정활동을 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아직 실감이 안 날 때도 있다. 용인특례시가 왜 특례시인가 느끼게 된다. 추경까지 하면 예산이 4조 원이다. 의원 한 명이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32명 의원의 존재 이유를 (실감했다).

4년 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도 앞선다. 지금으로서는 집행부 견제라는 것도 있겠지만 용인의 미래와 관련해 중대한 시점이다. 이 때문에 책무가 무겁다.

- 용인특례시의회에서 올해 의정혁신연구회 대표를 맡았다. 어떤 활동을 하는지 소개해 달라.

특례시가 되면서 바뀌는 조례 등이 굉장히 많아 집행부도 헷갈리고 있다. 의정혁신연구회는 일반시와 특례시 차이점이 무엇인지 등을 연구하고 있다.

연구회를 발족한 이유는 특례시에 맞는 조례, 그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조례 부분들을 심도 있게 연구해서 개선할 바는 개선하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자는 취지에서 발족하게 됐다.

- 용인특례시의회는 여소야대 형국이다. 여당 의원으로서 소통과 협치 방안은?

당생활을 오래 해왔다. 당에 소속돼 의회에 입성했다. 하지만 의원 연수를 가보니 의회 안에서는 당에 대한 소속감 등이 크게 의미가 없는 느낌을 받았다.

선거 외에는 의회 들어와서 무슨 당인가 구별해 생각하는 사람은 몇 명 없다고 생각한다. 여소야대가 큰 의미는 없다고 본다. 의장, 부의장 선거 때나 (여야 당 구분이) 의미 있는 게 아닐까 한다. 현재 (의회 내에서) 시정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 초선 의원이 32명 중 20명이다. 김 의원도 초선 의원이다. 원활한 의정활동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32명 의원 중에 나이순으로 16번째다. 그 와중에 저의 역할은 연륜 있으신 의원분들과 젊은 의원분들 사이에서 ‘가교’ 역할이라고 본다.

젊은 초선의원들이 많이 들어오셨다. 각 분야에서 전문가이시기 때문에 오신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전문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은 맞지 않는 듯하다. 의회에서 배워나가는 게 필요하긴 하겠지만 초선의원들의 역량들이 참 높다.

특히, 이번 9대 의원분들은 마인드도 훌륭하시다. 초선의 의욕 측면에서 집행부가 더 긴장해야 되지 않을까 한다.

- 상임위가 자치행정위원회이다. 자치행정위원회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자치행정위원회가 의회의 꽃인 것 같다. 다른 의원들도 자치행정위 활동을 하고 싶어 하신다. 다루는 스케일도 크고, 집행부에서 가장 요직인 부서를 관장하기에 그런 것 같다.

초선임에도 자치행정위에 들어간 건 행운이라고 본다. 자치행정위에 처음부터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다만 배분이나 지역 안배 등을 헤아리다 보니 그렇게 된 듯하다.

사실은 문화복지위 쪽을 기대했다. 2지망을 문화복지위로 써냈다. 1지망은 백지 위임한 상태였다.

당에서 재선을 유념하시고 자치행정위에 가는 게 좋다고 보신 것 같다. 자치행정위를 은근히 하고 싶어했는데 운 좋게 (된 것 같다). 한 번에 쉽게, 속성으로 시 집행부를 알고 싶으면 자치행정위 활동으로 습득할 수 있으니 (좋은 기회라고 본다). (시 집행부) 전 부서를 컨트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의원이 가려고 하는데 운 좋게 (가게 됐다). 욕심을 낸다면, 의회 4개 상임위는 한 번씩 경험하고 싶은 생각이다.

- 앞으로 상임위 활동 계획은?

위원회 활동이 예산 분야와 인사도 있다. 또 구청, 각 지역 등 지역구 관할도 가능하다. 자치행정위 외에 다른 문화나 경제, 도시 등은 전문성이 필요하다.

자치행정위는 개별 지역을 다루는 문제도 있다 보니 정치적인 것도 많이 필요로 하고 있다. 지역 발전에 관한 부분, 예산에 관한 부분도 심도 있게 보고 싶다. 각 분야에서도 예산을 다루지만 결국 집행부 컨트롤 부서가 다 자치행정위에 모여 있다. 때문에, 집행부가 쓴 부분을 심도 있게 다루고 싶다.

- 본인 지역구의 최대 현안과 해결 방안은 무엇인가?

지역구가 구갈동, 상갈동이다. 제일 열악한 부분이 문화적인 부분이다. 공연장 관련 시설이 아무것도 없어, 그런 갈증 많이 대두되고 있다. 교통도 가장 중심에 있으면서도 재건축, 재개발에 대한 열망이 높은 지역이다.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고 있다.

현안은, 표를 의식한다고 하면 기흥역 안에 중학교 신설이라고 본다. 이 부분은 교육감, 도지사, 도의원, 시장, 저까지 공격했던 부분이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그 안에 부지도 없고 교육부나 교육청은 절대 불가 방침이라고 한다. 지역민은 가장 현안으로 꼽고 있다.

다른 당 의원도 시정질문으로 그 부분을 언급했다. 하지만, 시장님도 제일 딜레마를 가지고 있는 뜨거운 감자가 아닐까 한다. 중학교 신설 문제가 대두된 지 6년 됐다. 대통령, 교육부장관, 도지사, 시장까지 같은 당이었을 때 이걸 왜 못했는지 안타깝다. 지금은 다 당이 달라 더 어려워졌다. 하지만 해결할 수 있느냐보다는 해야 된다고 본다.

- 마지막으로, 지역구 주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지역구에서 저뿐만 아니라 상대방 의원도 초선이다. 지역민들이 걱정하시는 부분이 꽤 있는 것으로 안다. 다른 지역에 계신 분들은 상임위원장, 의장, 부의장도 맡고 있다. 그런데 우리 지역구는 도의원도, 시의원도 초선이니 우려나 염려를 갖고 계시는 것으로 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열심히 일할 원동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매너리즘이나 이런 거 없이 다음이라는 여지의 희망이 있는 것이다. 지역에 여러 문제가 있는 만큼 중장기적으로, 연속사업으로 갈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본다. 지역구의 숙원 사업들을 믿고 맡겨 주시면 타 지역보다는 다른 면모를 보여드릴 수 있다고 본다.

다른 지역구에는 올해로 끝나시는 분들 계시니 조금은 신경을 좀 덜 쓰지 않나 싶다. 하지만 저희는 초선이기 때문에 다음을 위해서도 더 많이 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무엇이 불편하고 어려운가는 생활밀착형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제가 거기서 태어났고 저희 아이들도 거기서 태어났다. 믿고 맡겨 주시면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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