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유관순 열사'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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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의 '유관순 열사'를 아시나요?
  • 전철규 기자
  • 승인 2010.02.26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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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의 '유관순 열사'입니다. 같은 나이에 고문으로 숨진 것까지..유족을 못 찾아 힘들긴 하지만 '이선경 열사'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반드시 되밟을 것입니다"

수원박물관 이달호(56) 관장은 3.1절을 앞두고 수원 출신 이선경(李善卿)열사 재조명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 관장이 찾은 재판기록과 신문기사 등에 따르면 이선경은 수원군 수원면 산누리(현 수원시 남창동)가 주소지이고 경기여고에서 유학했다.

1921년 경성지방법원 재판기록에 19세로 적혀 있어 유관순 열사와 같은 1902년생으로 추정된다.

이선경은 1919년 3월 말부터 상해 임시정부와 연락을 취하며 독립신문과 조선 독립에 관한 기사를 게재한 인쇄물을 고향인 수원군 수원면 일대에 비밀리에 배포했다.

3.1운동을 하면서 혈복단이라는 비밀결사에 참여하고 1920년 6월 20일에 구국민단으로 이름을 바꿔 활동하다 검거됐다.

1921년 3월 12일 신문기사에는 이선경의 병이 나을 때까지 재판을 연기한 것으로 돼 있고, 1921년 4월 12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 관장은 "재판기록 등을 보면 이선경열사가 선고공판에 출석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돼 심한 고문으로 후유증을 얻은 것 같다"며 "이선경열사는 석방뒤 곧바로 숨진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일제가 감옥에서 숨지면 골치가 아플 것을 우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화여고에 다니다 고향인 천안 아우내장터에서 만세운동을 벌인 유관순(1902∼1920)열사와 비슷한 길을 걸은 셈이다.

유관순 열사는 서대문형무소에 복역중 고문의 의한 방광파열로 옥사했다.

이 관장은 "재판기록과 경기여고 학적부 등을 토대로 이선경열사의 독립운동을 재조명할 계획"이라며 "이용성이라는 이름의 친오빠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분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수원시는 이선경 열사의 유족을 찾지 못하더라도 독립유공자 신청을 할 계획이다.
수원시는 지난해 일제 강점기 수원예기조합 소속 기생으로 만세운동을 주도한 김향화에 대한 독립유공자 추서가 이뤄지도록 한 바 있다.

수원지역의 3.1운동은 1919년 3월 29일 건강검진을 받으려고 병원으로 향하던 기생들이 수원경찰서 앞에서 만세운동을 벌인 것이 시발점이 됐고 당시 23세였던 김향화가 시위 주동자로 체포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시는 김향화의 유족을 찾기 위해 제적등본 등을 뒤졌으나 당시 기생은 가명을 쓰는 경우가 많아 김향화 등 당시 만세운동에 참여한 기생 30여명의 이름을 통해 유족을 찾는 데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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