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장안 재선거 한밤중 선거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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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장안 재선거 한밤중 선거캠프
  • 정대영 기자
  • 승인 2009.11.10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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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선거캠프 앞에서 만난 파지 할머니의 하소연'


수원 장안 재선거의 막판 주말 유세가 잡혀 있는 지난달 23일 늦은 저녁 3명의 여야 후보 선거대책본부가 모두 들어선 조원동 홈플러스 4거리 일대를 대책없이 찾았다. 창간 작업을 하느라 제대로 돌아다닐 수 없었고 창간호가 나온 후에는 또다시 새로운 특집기사를 취재하느라 선거판을 따를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후 10시를 바라보는 시간이다. 신호등을 건너 먼저 한나라당 선대본을 찾아 건물 입구에 들어서려니 늙수그레한 할머니 한분이 주섬주섬 쓰레기를 뒤지는 할아버지와 함께 한묶음도 안되는 파지 옆에서 험한 욕설을 섞어가며 악을 쓰고 있었다.

나는 그 알량한 목적이 있었기에 그저 그러려니 그곳을 지나쳐 전화홍보를 하는 지하실에서 홍보 담담자를 찾고 2층 선대 사무실로 다시 올라가 분위기를 읽는다. 예전 모습은 찾을 수 없지만 얼굴 익숙한 김동건 아나운서가 언뜻 비치고 당직자들이 자리를 지킬 뿐, 찾는 이는 없었다. 결국 그분과 통화를 하며 걸어나오는데 여전히 목소리 격앙된 할머니의 하소연이 이어지고 있다.

"그 X이 2시간 이 골목 저 골목 뒤지며 챙겨둔 폐지 한 아름을 잠깐 우리가 종이박스 주으러 다니는 사이에 아들 차로 챙겨 갔다. 이곳 2층에서 내려오는 것 봤다. 이런 경우가 어딨냐? 내가 그 X 잘 안다. 이런 데서 일하면서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느냐?"는 게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처음에는 시큰둥하게 지켜보던 한나라당 선대본 관계자 한둘이 쉬지 않고 떠드는 할머니의 기세에 조금씩 안색이 변하고 있었다. 달래기 위해 이런 저런 말들을 보태며 위로하기 시작한다. 그 곁으로 남경필 의원과 당직자 한무리가 어디론가 길을 나선다.

내가 보기에 할머니의 행동은 2시간 품을 도난당했는데 당신들 쪽에서 나온 사람이 그랬으니 보상을 해달라는 무언의 몸짓이었다. 다만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귀찮고 짜증나는 분위기를 종료시키려 했을 뿐, 대안은 없었다. 몇 천원이라도 찔러넣어 보내면 선거법 위반에 걸릴까 그랬나?

파지 할머니의 기세는 사그라들지 않는다. 이런 거 해서 무시하는 거냐고, 우리 아들 딸도 은행다니고 사업하고 잘 산다고…… 계속 말이 길어졌다. 송죽동에 산다는 할머니를 위로하고 이런 저런 사연을 들으며 "할머니, 그럼 2층 박찬숙 후보 만나 이야기하세요"했더니 한나라당 관계자는 그것 갖고 딴지를 건다. 자기가 해결할 테니 당신을 가라는 식으로 퉁을 놓으며. 

"내가 할머니 위로하는 게 잘못된 겁니까?", "할머니 표로 이야기하세요. 여기서 아무리 소리 지르셔도 해답이 없어요"

그 말 한마디 남기고 민노당 선대본으로 걸음을 옮기니 사무실은 이미 오늘 일정이 파장이다. 주말 대혈전을 준비하기 위해서인지 신용욱 경기도당 사무처장과 이성윤 수원진보연대 상임대표가 남아 마지막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민주당 이찬열 후보 사무실. 홍보파트는 방금 주말 대책회의를 시작했다고 얼굴 한번 보여주고 이내 회의장소로 꼬리를 감춘다.

소득없이 버스정류장으로 가려니 멀찌감치 사거리 한켠의 한나라당 선대본 건물 앞에서는 여전히 그 할머니인듯 키작은 사람이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실루엣이 잡힌다. 길건너 전화박스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30분이 넘어서려나. 그제야 길을 건너는 작은 키, 맞다. 할머니였다.

샛길로 빠져나가는 할머니를 따라갔다. 비껴선 골목 한켠에 손수레를 세워놓고 오늘 주운 종이박스를 정리하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할머니는 최옥희라고, 나이 70이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친오빠란다. '5남매인데 저 오빠는 조원동에 살고 있다'는 말을 하면서 눈은 구석구석을 살핀다. 병 몇 개가 들어있는 비닐 봉지를 챙겨 오빠에게로 가져다 놓고 다시 길을 나선다.

아까 한나라당 당직자가 "할머니, 그렇게 소리지르고 말씀하시면 표 떨어져요"라며 조용히 시켰다는 한 마디 말과 함께.   

할머니를 뒤로 하고 손수레 정리를 하는 할아버지에게로 갔다.  끝내 이름은 밝히지 않으시고 일흔 여덟이라고 하셨다. 잃어버린 파지를 팔면 얼마나 되냐고 물었다. 한 4000원 쯤 된다기에 극구 사양하는 할아버지에게 5000원을 드리고 헤어졌다.

과연 선거는 누구를 위한 것인까?   파지 할머니는 선거운동 한다고 이런 데 드나드는 분이 그러면 되겠냐는 말을 많이 했다. 역으로 그런 사람이 어떻게 선거운동원이 될 수 있느냐는 항변 같았다. 엷은 술기가 느껴지는 두 어르신들의 입술에서 곤고한 삶의 피곤기를 읽는다. 어떤 시절을 살아왔는지 알 수 없지만 나이들면 나이에 맞는 삶을 살 수 있는 그런 세월이 우리들 세상이면 좋겠다고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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