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빛민원실 베테랑팀장들이 76년 만에 찾은 아버지의 이름…수원특례시 ‘민원 후견인’이 이어준 기억
-6·25 전쟁 중 납북된 의용소방대원 고 최호철씨 기록 확인 -수원시 새빛민원실 베테랑팀장들, 기관 조회·현장 동행으로 자료 찾아 -유가족 “행정 넘어선 따뜻한 동행…아버지 명예 되찾는 계기”
[경기타임스] 전쟁은 총성과 포화만 남기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가족의 삶과 기억을 갈라놓고, 때로는 한 사람의 존재를 역사 속에서 지워버리기도 한다.
수원 연무동에 사는 최윤한(82) 씨에게도 6·25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간이다. 1950년 납북된 아버지 고 최호철(1917년생) 씨의 흔적을 찾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여러 기관을 찾아다녔지만 돌아온 답은 늘 ‘자료 없음’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수원시 새빛민원실을 찾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베테랑팀장들이 ‘민원 후견인’이 되어 경찰청과 소방청, 국가기록원, 통일부 등 관계 기관을 직접 조회하며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고 최호철 씨가 6·25 전쟁 납북자로 공식 기록돼 있고, 납북 당시 직업이 소방관으로 기재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가족과 함께 파주 국립 6·25전쟁납북자기념관을 찾아 추모비에 새겨진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가족이 헤어진 지 76년 만에 비로소 아버지의 존재가 공식 기록으로 남게 됐다.
이 사례는 단순한 민원 해결을 넘어, 행정이 시민의 기억과 명예를 회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수원시가 운영하는 ‘민원 후견인’ 제도가 개인의 오랜 상처를 치유하는 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이번 기사는 전쟁이 남긴 가족의 아픔과 이를 함께 풀어낸 행정의 역할을 조명한다.
-남은 기록은 1950년 납북, 납북 전 의용소방대 활동
최씨가 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1950년 납북됐고, 납북 전 의용소방대로 활동했다는 것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난해 6월 수원시 새빛민원실을 찾았다. 새빛민원실 베테랑팀장들은 그동안 만났던 공무원들과 달랐다. 최씨의 말을 끝까지 귀 기울여 들어주고, 간절한 마음을 헤아려줬다.
김영덕·김남현·구원서 베테랑팀장은 최씨의 ‘민원 후견인’을 자처했다. 먼저 경찰청, 소방청, 국가기록원, 통일부 등 관계 기관에 최씨 아버지에 대한 사실 조회를 하고, 기록을 요청하며 자료 확보에 나섰다.
통일부로부터 고 최호철씨가 납북자로 공식 결정된 기록과 함께 납북 당시 직업이 ‘소방관’으로 기재된 자료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베테랑팀장들, 유가족과 함께 6.25전쟁납북자기념관 찾아 기록 확인
베테랑팀장들은 더 상세한 자료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해 9월 유가족과 함께 파주에 있는 국립 6.25전쟁납북자기념관을 방문해 전시관 벽면과 야외 추모비에 고 최호철씨의 이름이 등재된 것을 확인했다.
아버지와 헤어진 지 76년 만에 처음으로 아버지의 기록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최윤한씨는 추모비에 새겨진 아버지의 이름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눈시울을 붉혔다.
베테랑팀장들은 경기도의용소방대 연합회장,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관계자를 찾아가 최호철씨의 공적을 기리고, 유가족을 예우할 방안을 논의했다.
수원소방서는 고 최호철씨를 명예의용소방대원으로 위촉하고, 지난 3월 19일 열린 의용소방대의 날 행사에 유가족을 초청해 위촉장을 수여했다. 수원소방서 의용소방대연합회는 유가족에게 감사패를 전달했고, 경기도의용소방대연합회에서는 명예의용소방대원 위촉패를 수여했다.
“한 사람의 아픔과 간절함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 느낄 수 있었다”
최윤한씨는 이재준 수원특례시장에게 편지를 보내 “아버지가 납북된 후 가족들은 수십 년 동안 가슴 아파하며 아버지를 그리워했다”며 “파주(6.25전쟁납북자기념관)까지 가는 길은 혼자 감당하기가 벅찼지만, 베테랑팀장님들께서 함께 해주셔서 큰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한 행정 지원을 넘어, 국가와 사회가 한 사람의 아픔과 간절함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며 “제게 큰 위로이자 희망이 됐다”고 거듭 고마움을 표현했다.
베테랑팀장들에게도 편지를 보내 “단순한 도움을 넘어, 인간으로서 깊은 따뜻함과 진심을 보았다”며 “김영덕·김남현·구원서 베테랑팀장님들 덕분에 아버지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최윤한씨와 동행했던 베테랑팀장들은 “납북자들은 때로 월북이라는 오해를 받아 유가족들이 상처받는 경우가 많다”며 “민원 후견인 제도를 기반으로 최씨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는데, 고 최호철씨의 삶이 다시 조명되고, 명예를 찾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