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세 소년 앤디 워홀(ANDY WARHOL)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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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세 소년 앤디 워홀(ANDY WARHOL)을 만나다
  • 김민준 객원기자
  • 승인 2010.06.28 0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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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에서 온 가난한 소년은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막연히 나마 그렸는 지 모릅니다.  아니, 그 어린 소년은 아주 옹골차게 꿈을 ‘레이아웃(Lay out: 설계)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느닷없이, 금세기 최고 ‘팝 아트(Pop Art)'의 거장을 말하고 싶어지는 오늘 밤입니다. 왜냐구요?
52세 소년(?), 저 필자가 감히 그 거장 을 닮고 싶고 더 나아가 능가하고 싶기 때문 입니다.

초현실주의 화가 ‘피카소’, ‘달리’ 등이 깨고 싶어 했던 그 고고하고 고매한 예술의 ‘경직성(硬直性)’을 비웃기라도 하듯 쉽게 아작 내버린 그가 바로 저 필자가 넘 좋아하는 ‘앤디워홀’형(兄)입니다.

그냥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지나쳐 버릴 수도 있는 섹시한 몸매의 ‘코카콜라’병을 도화지에 ‘실크 스크린’(Silk Screen: 일종의 판화기법이며, 요사이는 홍보 광고물에 글씨를 새길 때 쓰이는 가장 대중적인 방법입니다)으로 찍어 낸 이가 바로‘워홀’이거든요. 

예나 지금이나, 어느 분야에서 든 소위 기득권층에 속해있는 부류들은 그들만의 리그에 새로운 ‘내용과 형식’이 나타나면 여지없이 ‘사이비(似而非:가짜)’라 말하며, 자기들의 기존 권위를 지키려 합니다.  보수적인 예술, 특히 ‘미술’의 세계에서는 일로 말로다가 형언할 수 없었을 겁니다.

때마침  ‘1960’년대 미국..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조(思潮)가 점차 ‘팽배’(澎湃)하기 시작했었고,  이를 잘 활용한 ‘워홀’의 ‘천재성’은..  ‘그만의 작품제작 방식("Art" that made in WARHOL)으로 미술 분야에서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 당대의 중심이론이나 사조)’의 하나로 인정받기에 이릅니다.
그 ‘패러다임’이 다름 아닌 ‘팝 아트(Pop Art)’ 라 우리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거칠 것 없어진 ‘워홀’은 ‘캠밸(통조림 스프)’, 반지모양의 사탕인 ‘라이브 세이버’, ‘브릴로(비누가 들어있는 상자)’에서 ‘모나리자(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세기의 작품)’에 이르기 까지 말도 안 되는(?) 다작(多作)을 토해내며 잘난척(?)하기에 이릅니다.
 어찌 그 뿐이겠습니까? 우쭐해진 우리의 천재는 못생긴 자신의 얼굴까지도 ‘신비주의(神秘主義)화’하여 상품화 시키게 되었드랬지요. 마치 ‘할리웃 스타’처럼..

당근, 우리시대 ‘산업디자인’을 전공하려는 대학 ‘프래쉬 맨’들에게는 그에 관한 모든 것 들이 ‘바이블(성경: ’어떤분야에서의 고전같은 위치‘를 이름)화’ 된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일테고요.

모름지기, ‘창조는 기존의 질서를 혁파’함으로써 이뤄진다고 하지요.

아무리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이 미덕 중 미덕으로 받아들여지는 ‘미국’임을 감안하더라도, ‘워홀’의 실용을 기반으로 한 ‘새로움을 향한 지난한 역동성’은 아주 크게 인정받아도 부족함이 없다고 저 필자는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번 ‘칼럼’이 ‘경기타임즈’를 애독하시는 독자님들에게 다소 생소하고 어려운 ‘이야기’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독자님들! 조금은 심각해지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적어도, 52세 철없는 소년인 저 필자보다 ‘연식’이 덜된 후배님은 더 심각하게 살아가시면 어떨른지요?  ‘심각’한 고민이 ‘새롭고 새로운’것을 창조할 수 있으니까요.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 온 가난했던 ‘앤디워홀’..
‘1987’년 세상을 떠났지만..
‘팝 아트’ 분야의 전설로 남았습니다.

'TV'를 켜면 제일 먼저 등장하는 ‘광고’ 물들..
‘앤디워홀’이 새삼 위대하게 다가옵니다.

독자여러분께 잠시 이별을 말하고자 합니다.
다시 찾아 오겠습니다.

멋진 ‘영화’를 만든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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