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논란의 삼성 반도체 생산라인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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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논란의 삼성 반도체 생산라인을 가다.
  • 전철규 기자
  • 승인 2010.04.1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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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재조사 의지 밝혀.."문제 해결 이제부터"

그간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에 근무했던 직원들 가운데 지난 13년간 22명에게서 백혈병 및 림프종이 발병하고 이 중 10명이 숨졌다.(삼성전자 집계)(23명, 사망자가 9명반도체 노동자의 인권단체인 '반올림' 주장)

이때문에 노동계와 의료계 등에서는 반도체 생산공정이나 공정에 사용되는 물질에 발암성이 있는 게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해 왔다.

특히 지난달 31일에는 2004년부터 반도체 생산라인에 근무하다 2007년 백혈병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던 박지연(23) 씨가 숨지면서 논란이 커졌다.

이에 삼성전자가 지난 2∼3년간 '반도체 백혈병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기흥 반도체 생산라인을 15일 제한적이나마 언론에 공개했다.

삼성이 사회적인 논란을 해소할 목적으로 반도체 생산라인을 언론에 집단으로 공개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삼성전자는 10여분간 이어진 이날 공개를 통해 발병의 원인으로 지적돼온 반도체 세척이나 검사 공정에서 수작업이 완전히 없어지거나 안전규정이 준수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사망자를 포함해 발병자들이 집중적으로 발생한 1∼3라인이 이미 다른 공정으로 바뀐 상황이어서 이날 행사가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지는 미지수다.

삼성도 이런 점을 인정하고 국내외 전문가 그룹을 통한 작업환경 재조사와 더불어 유족들을 상대로 '적절한 시기에 적정한 방법'으로의 공개를 약속했다.

◇개선된 작업 라인..미세먼지도 차단 = 경부고속도로 기흥.동탄 인터체인지를 빠져나가 도착한 삼성전자 기흥반도체 사업장은 말 그대로 철저한 보안구역이었다.

차량으로 정문을 통과해 조금 올라가자 '여기부터는 삼성전자의 보안구역이므로 출입이 제한됩니다'라는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군 부대를 방불케 하는 경비가 이뤄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작업환경에 대한 삼성전자 측의 설명회에 이어 기자들에게 공개된 반도체 생산 5라인은 기흥사업장 K1 구역에 있었다.

1993년 6월 양산이 시작된 곳으로, 현재 가동되는 삼성의 반도체 라인 가운데 시설이 가장 낡았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메모리담당인 조수인 사장은 5라인을 공개대상으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현재 라인 가운데는 (발병이 집중됐던) 3라인과 가장 환경이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편히 숨쉬기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조여맨 마스크를 포함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방진복으로 `완전무장'한 취재진은 한 차례 에어샤워를 받은 뒤 클린룸에 진입했다.

이곳에선 총 400여명의 생산직 여직원들이 4조3교대로 근무하며 비(非)메모리반도체인 시스템 LSI를 생산한다. 미세먼지도 있어서는 안 되는 곳이기에 직원들은 화장은 물론, 머리에 무스 등을 바르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취재진도 이곳에서만큼은 '필수무기'인 필기구와 수첩을 휴대할 수 없었다.

반도체의 전(前)공정이 이뤄지는 이곳을 둘러보는 10여분간 여러 단계로 나뉜 작업구역에서 생산직원들과 엔지니어들이 작업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현존하는 가장 낡은 설비라고는 하지만 발병논란이 집중된 세척이나 검사공정을 수작업으로 하는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작업환경이 개선된 것이다.

다만 작업 부품이나 도구를 자동장비가 아닌 카트에 실어 운반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5라인에 이어 찾은 K2 구역의 S1라인은 시스템LSI 제품과 함께 삼성전자 반도체의 새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파운드리(수탁가공) 제품을 생산하는 곳이다.

이 라인은 2005년 8월부터 양산에 들어간 신 라인이다. 그래서인지 생산시설 내부와 복도가 모두 반질반질한 모습이었다.

이곳에선 방진복을 입고 생산시설에 들어가지 않고 창문을 통해 생산공정을 들여다보는 '윈도투어' 방식으로 공개가 이뤄졌지만 직전에 둘러본 5라인과는 느낌이 근본적으로 달랐다.

거의 전자동화 설비가 갖춰져 수작업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조당 60명이 근무하고 있다"는 현장 관계자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넓은 생산시설 내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부품이나 완제품의 운송도 천장에 설치된 장비를 통해 움직였고 수작업이 개입할 여지는 별로 없는 듯했다.

◇문제 해결은 이제부터 = 두 차례의 역학조사 결과 반도체 작업공정과 백혈병 발병은 별 연관성이 없다는 점을 삼성전자는 라인공개에 앞서 누차 강조했다.

노동계와 유족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납땜 공정에 대해 삼성전자는 "작업에 쓰는 용액(141B)에 제품을 담그면 발생하는 연기는 유해물질이 아니라 송진이 타면서 나오는 가스"라고 말했다.

또 납땜 장소에는 유해가스를 가라앉히는 '국소배기장치'가 갖춰져 있다고 했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조사과정에서 유해물질인 벤젠이 검출됐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벤젠은 공기 중에 노출이 됐을 때 1ppm을 넘느냐가 관리 기준"이라며 "벤젠은 시료에서 나온 것이지 공기 중에 노출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아울러 방사선에 노출될 수 있는 장비에는 `인터락(안전장치)'이 있으며 이를 해제한다고 생산량이 늘지 않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해제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삼성 반도체라인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 가운데 림프조혈계암(백혈병, 림프종 등) 발생이 파악된 사례가 23명, 사망자가 9명(반도체 노동자의 인권단체인 '반올림' 주장으로, 삼성은 발생 22명, 사망 10명으로 파악하고 있음)에 이르는 상황에서 삼성의 설명이 논란을 완전히 잠재우기는 다소 버거워보인다.

우선 발병자가 집중된 1∼3라인은 이미 검사과정이나 LED 생산라인으로 변경된 상태다.

삼성은 3라인의 생산설비를 다른 곳에 보관하고 있고 작동도 가능해 다시 조사가 이뤄지더라도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장기간에 걸친 역학조사에 전혀 문제가 없을 만큼 당시의 근무환경을 완전히 재현하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문제가 없다'고 강조하면서도 삼성전자가 이날 국내외 연구. 학술단체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작업환경을 재조사할 의향이 있으며 유족 측이 추천하는 기관도 공신력 있는 곳이면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밝힌 점은 단기간 내 모두가 납득할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고민의 산물로 해석할 수 있다.

조수인 사장은 설명회에서 "앞으로 어떻게 그 분들(유족들)을 도울 수 있는지 생각하겠다"며 "오늘을 계기로 소통하는 열린 기업활동을 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이에 대해 그간 백혈병 문제를 제기해온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의 이종란 노무사는 "삼성은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발병 노동자들이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조력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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