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달동네 통수바위 마을 한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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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달동네 통수바위 마을 한풀어
  • 전철규 기자
  • 승인 2009.12.17 1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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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그리던 광교신도시 아파트 입주

"남들은 달동네라지만 우리에겐 수십 년을 살아온 더할 나위 없는 보금자리였어요. 이번 겨울이 마지막이네요. 다행히 광교신도시로 들어갈 수 있어 한 시름은 놓았어요"

한파가 몰아친 17일 오전 경기도 수원의 마지막 달동네 '퉁수바위' 마을(장안구 연무동 산 21의 1)의 철거민대책위원회 사무실.

수원 화성(華城)에서 직선거리로 채 100m가 되지 않는 43번 국도변 낮은 언덕 위에 낡은 컨테이너와 판잣집을 붙여 지난해 3월 지었다.

합판 벽면 사이로 한기가 스며들고 출입문 비닐 창은 반쯤 찢어져 나가 영락없는 달동네의 초라한 사랑방 모습이지만 주민들에게는 그간의 삶을 보상해 준 자랑스러운 모임터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두툼한 겨울옷을 입은 주민들이 대책위 사무실을 차례로 찾더니 녹슨 연탄난로 주변에 모여 주민등록등본과 가족관계부를 챙겼는지 서로에게 물었다.

꿈에 그리던 광교신도시 아파트의 특별공급분을 받게 돼 관련 서류를 경기도시공사에 접수하는 날이다.

"무허가 주택들이지만 이주대책도 없이 마을을 없애고 공원을 만든다고 해 시청 앞에서 벌인 집회만 2년동안 20여 차례가 되는 것 같네요. 하지만 절대 폭력시위는 하지 않았어요. 희망을 잃지 않았고 서로를 믿었죠"
어린 나이에 퉁수바위 마을로 와 32년을 살았다는 김동희(43.일용직 노동자)씨는 감회에 젖어 그간의 애환을 털어놨다.

철거민 관련 단체에서 도움을 준다고 했지만, 마을회의에서 '평화적으로 해결하자'고 중지를 모으고 퉁수바위 마을의 힘만으로 헤쳐나가자고 결의했다고 한다.

망루를 짓는 대신 허수아비 10여 개를 세우는 등 그들만의 투쟁방식을 고집했다.

전체 83가구 가운데 41가구가 건물보상비와 이사비, 이주정착금을 받고 이사했지만 붙잡지 않았다.

떠나간 주민들의 집 20여 채가 철거됐고 나머지는 빈집으로 남아 마을 전체가 을씨년스럽게 됐지만 개의치 않았다.

주민들끼리 관련법을 공부해 공공기관이 짓는 아파트를 주민 모두 특별공급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고 수원시와 협상에 협상을 거듭했다.

결국 수원시는 이달 초 퉁수바위 마을 가옥주 42명 모두에 대해 광교신도시에서 경기도시공사와 LH공사가 짓는 일반분양 아파트를 특별공급한다고 발표했다.

이범식(49)수원시 공원녹지팀장은 "주민들의 애절한 바람에 경기도시공사와 LH공사도 결국 협조하게 됐다"며 "특별공급이라지만 입주시기인 2011년 말까지는 4억원을 마련해야 할 텐데 주민들 형편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봄 예정대로 보상과 이주가 끝나고 경기도시공사와 LH공사의 승인이 있다면 아파트 전매가 가능하다고 이 팀장은 전했다.

대책위를 나와 둘러본 퉁수바위 마을은 1960년대 한국전쟁 이후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형성됐다는 주민들의 말처럼 시대를 달리 사는 도심 속의 외딴 섬과 같았다.

계단식으로 집을 지어 아랫집을 훤히 볼 수 있고 옆집과는 다닥다닥 붙은데다 폭 1m가 채 되지 않는 좁고 구불구불한 마을 길은 TV다큐멘터리프로그램에나 나올 듯 했다.
주민 이모(58.여)씨는 "장애인인 남편은 주차관리를 하고 나는 주방에서 일하며 삼형제를 키웠다"며 "좋은 집으로 이사하게 돼 기쁘지만 올겨울이 지나면 정든 고향과 이웃을 떠난다는 생각에 착잡하다"고 했다.

주민대표 김경숙(46)씨는 "노인분들만 살아 연탄을 때는 세가구에는 주위에서 도움을 줘 연탄 300장씩 구비하고 있고 기름을 때는 집에도 달동네 아픔을 아는지 배달원들이 웃돈을 받지 않아 주민들이 마지막 겨울나기에는 어려움이 별로 없다"고 전했다.

김씨는 특별공급을 받은 아파트의 분양가를 조성원가로 낮출 수 있도록 다시 협상에 나서겠다고 했다.
수원 동(東)공원으로 조성되는 퉁수바위 마을은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만 바위처럼 살아온 마지막 달동네 주민들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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